사람들이 칭찬하고 성공적이라고 여기는 삶은 여러 가지 삶의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왜 각기 다른 온갖 삶의 방식들을 제쳐두고 하나의 삶의 방식만을 과대평가해야 하는가?
외진 곳에서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다
[오히려 최첨단 가족]을 쓴 박혜윤 작가의 책이다. 작가는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첫째아이와 함께 미국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역시 기자였던 남편과는 기러기 생활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 남편 역시 기자를 그만두고 한국에 있던 둘째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들어와 네명의 가족이 모두 함께 살고 있다.
제목이 숲 속의 자본주의자인 이유는 작가와 가족들이 사는 곳이 외진 곳이기도 하고 작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이 외진 숲 속 같은 곳에서도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지 싶다.
박혜윤 작가와 남편은 현재 고정적인 정규직으로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이 없다. 그리고 외진 곳에서 물질적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나 자신에게 자족하면서 살겠다는 소망을 이루며 살고 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을 처음 접하면 '자연인'이라는 말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자연인은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이 자본주의 덕에 이렇게 살 수 있구나 싶다. 자본주의 사회의 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집약화된 노동력과 기술력 덕에 소비자로서 값싸게 재화를 얻을 수 있어서 그들이 고정적인 수입 없이도 가계를 그들에게 충분하게 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자본주의의 혜택이라 하면 자본주의 시스템을 활용해 엄청난 부와 재화를 얻어서 고가의 사치스러운 소비를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지만, 이렇게 소박하게 최소한 스스로가 납득할 만큼의 노동으로도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것 또한 자본주의 덕분이라는 접근이 마음에 든다.
사회가 바라는 나, 내가 바라는 나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이쯤 말하고, 내가 박혜윤 작가를 좋아하는 건 세상이 바라는 삶의 방식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통해 자신의 방식대로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자체가 사회에 어떤 숨통을 틔어주는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누구나 다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이렇게 사는게 개인적으로는 더 어려웠다.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사실 가장 쉽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가서 취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낳고 아이 교육시키고 그 와중에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낼 수 있는 소비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자산도 최대한 불려야 한다. 다수가 이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루트에서 벗어나면 일단 소수가 된다.
소수가 된다는 건 생각외로 불안하고 또 힘든 일이다. 일본 감독이자 배우 기타노 다케시의 명언 '여럿이 건너면 빨간 불도 무섭지 않다'라는 말처럼 여럿이 한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안심하게 된다. '나만 그런게 아냐'라는 마음이랄까.
그래서 박혜윤 작가의 책이 참 소중하다. 나 말고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감각이 참 소중하기 때문에.
아래는 좋아하는 구절을 발췌한 내용이다.
나는 어떤 일에도 100%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처음 시작할 때, 항상 생각하는 건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다. 취미 생활을 할 때도 장비를 먼저 준비하지 않는다. 회사에 다닐 때도 박사 공부를 할 때도, 갑자기 그만두어도 억울하지 않을 정도로 대충 한다. 다음에 할 일, 내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에너지나 돈이 항상 남아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 인생관이다. 나는 나 자신의 삶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한 끝에 지쳐버려서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게 되는 것도 싫고 좋아하는 사람과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는 즐거움을 놓치기도 싫다. 그리고 어떤 일이고 지겨워지거나 멈추고 싶을 때 언제라도 그럴 수 있는 자유도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이 가치들이 중요한 만큼 세속적인 욕망은 약하다.
아무렇게나 한다. 그렇지만 한다.
나는 무얼 해도 아무렇게나 한다. 실용적인 목적이 없어도 되고 남들을 이길 필요도 없다. 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실패하거나 못하는 건 없다. 하다가 말아도 괜찮다. 그래서 별로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하고 본다. 걱정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렇게 사는 게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나만의 시각과 태도로 산다고 해도 인생에는 여전히 의문이 많고 결정해야 할 일도 많다. 다만 그 의문들이 두렵기보다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왜 안되나?
어떤 리뷰를 보니 박혜윤 작가의 삶이 '위험해 보인다'라고 표현했던데, 이 말이야 말로 다수가 소수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닐까 싶다. '저래도 되나? 저러면 나중에 후회할텐데?' 하지만 내 생각에는 '위험하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에 대한 정의가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다른 사람들 눈에 위험해 보이는 결과도 정작 내겐 위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나 사회가 보기에 불쌍하고 불편한 삶도 내겐 그렇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들의 생각이나 사회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이 편한 삶의 방식을 지키는 것. 그것이 '나로 산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묘한 만족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내가 지켜야 할 가치가 절대적이라는 믿음이 사라지면 똑같은 행동을 해도 훨씬 가볍고 즐겁다.'는 작가의 말이 크게 와닿는다.
아래는 좋아하는 구절을 발췌한 내용이다.
욕구 자체가 나를 힘들게 하는게 아니라, 욕구가 어떤 선을 넘어서도 계속 될 때가 힘들다는 것을 살면서 배웠다. 시험 공부가 힘든 게 아니라, 시험을 잘 보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생각이 힘들었다. 빵 굽기도 새벽부터 밀가루를 반죽하고 밤낮으로 반죽을 주시하며 만드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최고의 빵을 욕망할 때 힘들다. 돈을 못 벌어서 힘든 게 아니라, 돈이 언제나 부족할 거라는 미래의 전망 때문에 더 힘들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남 보기에 아이를 잘 키우거나 화목하고 모법적인 가족을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아이를 키우고 싶었고, 그냥 가족이면 됐다. 목표가 없는 것과도 연결이 된다. 그냥 달리고 싶었던 거라면, 운동화를 신고 내딛는 순간 소원이 이뤄진다.
나를 묶어두지 않는다.
우리는 다 다른데 왜 같은 것을 원하며 달리고 있을까?
남들의 삶에 가타부타 하지 않고 다양하게 생각하고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그저 그렇구나 이해하는 것 만으로도 무거워지고 답답해졌던 마음이 가볍게 풀어지기도 한다.
요즘 일상이 무겁고 마음이 답답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굳이 소박하게 살지 않아도 자연으로 돌아가 살지 않아도 작가는 '나'에 초점을 맞추고 '나의 삶'을 사는 마음가짐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참고할 부분이 많을테다.
아래는 좋아하는 구절을 발췌한 내용이다.
우리를 채워주는 것은 다 다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다름은 탐구하고, 내가 행복해지는 맥락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가족들과 낄낄거릴 시간이 많고, 틈나면 흙을 만질 수 있는 이런 환경이 좋다. 돈과 사회적 지위는 두 번째 문제였다. 이런 나에 대한 사실도 의식적으로 무엇이 내게 더 맞는지 묻지 않는다면 알 수 없다.
내가 가진 건 자존감이 아니라 적극적인 탐구 끝에 얻은 나에 대한 이해다. 언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지, 무엇이 나를 채워주는지, 어떤 거리감이 좋은지, 나를 아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쫓아다니지 않을 수 있다.
시골에 오지 않아도 궁금해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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